최근 온라인상에서 "일본의 10살 초등학생이 곤충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소문이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호랑나비 애벌레 시절의 기억이 성충은 물론 그 자손에게까지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은 최근 곤충학 연구자 '갈...
최근 온라인상에서 "일본의 10살 초등학생이 곤충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소문이 퍼지며 화제를 모았다. 호랑나비 애벌레 시절의 기억이 성충은 물론 그 자손에게까지 유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과학 전문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은 최근 곤충학 연구자 '갈로아'와 함께 이 흥미로운 사연의 팩트와 과학적 맥락을 심층 분석했다. 본지는 이를 바탕으로, 과장된 영웅 서사를 걷어내고 이 어린 연구자의 실험이 현대 생물학에서 지니는 진짜 가치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단면을 탐사했다.
연구의 주인공은 일본의 한 초등학생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치원이 문을 닫자 집에서 호랑나비 애벌레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소년은 애벌레가 일반적인 탈피 횟수(5령)를 넘어 과변태(6~8령)를 하는 현상을 치밀하게 관찰·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전문가인 대학교수(마사 에이즈만)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 공동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소년의 가장 큰 궁금증은 "내가 키운 나비는 야생 나비와 달리 내 곁을 떠나지 않는데, 혹시 애벌레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것일까?"라는 낭만적인 질문이었다. 교수의 조언에 따라 소년은 애벌레에게 특정 향기와 함께 전기 충격(고통)을 주어 '혐오 기억'을 학습시킨 뒤, 성충이 되었을 때 그 향을 피하는지 확인하는 'Y자 미로 실험'에 돌입했다.
이 연구가 2024년 교토곤충학회에서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은 진짜 이유는 이론의 새로움이 아니라, 한계가 뚜렷한 가정집 환경에서 고안해 낸 '독창적이고 윤리적인 실험 설계'에 있다.기존 학계에서 곤충에게 혐오 기억을 심을 때는 강력한 전기 전극과 '에틸 아세테이트'라는 치명적인 화학 물질(살충 성분)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소년은 "어떻게 살아있는 애벌레에게 곤충을 죽이는 물질을 쓸 수 있느냐"며 반문했다.소년은 살충제 대신 곤충에게 무해하면서도 낯선 '시중 라벤더 향'을 사용했다. 또한, 미세한 애벌레가 죽지 않도록 시중에서 파는 '저주파 마사지기'를 손에 붙이고 애벌레를 올려놓는 기발한 방식으로 안전한 수준의 스트레스(전기 자극)를 가했다. 기존 연구자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통제 방식에서 벗어나, 생명을 존중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하는 놀라운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라벤더 향에 고통스러운 기억이 각인된 호랑나비들은 성충이 되어서도 라벤더 향을 회피(68%)했다. 놀라운 것은 이 나비들이 교미하여 낳은 자식 세대(66% 회피)와 손주 세대까지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라벤더 향을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수컷(아빠)이 훈련되었을 때 혐오 기억이 더 잘 유전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전문가들은 이를 '후성유전학(Epigenetics)'의 훌륭한 관찰 사례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뇌의 신경망(시냅스)에 형성된 후천적 기억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적 요인과 경험이 DNA 염기서열 자체를 바꾸지는 않더라도, 스위치 역할을 하는 'DNA 메틸화(Methylation)' 등을 통해 유전자 발현 패턴에 메모를 남기고 이것이 후대로 유전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안될과학'에 출연한 갈로아 연구원은 "이 연구로 곤충학계 전체가 뒤집혔다는 식의 반응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며 객관적인 선을 그었다. 애벌레의 기억이 성충까지 이어지거나 일부 유전된다는 사실 자체는 플라나리아나 다른 나비 종 연구를 통해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연구는 학회 포스터 발표 단계로, 정식 동료 평가 논문은 아니다.)그러나 전문가들이 이 소년에게 환호한 이유는 명백하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호랑나비'를 대상으로, 학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비살상적 장비'를 동원해, 수컷과 암컷의 유전적 차이(부계/모계)까지 세밀하게 통제해 낸 과학적 태도와 집념 때문이다.이번 사연은 첨단 장비와 막대한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과학계에서도, 일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생명을 대하는 따뜻한 관찰력이 여전히 위대한 발견의 씨앗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값진 사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