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쓴 시 같아요"… 완벽주의 시대, 우리가 '오답'과 '에어기타'를 허락해야 하는 이유

최근 방영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4'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창작자, 배우 심은경과 소설가 김애란이 자신들의 '실패한 꿈'을 털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대중에게는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각인된 이들이 과거의 낯뜨거운 자작시와 힘 조절에...

최근 방영된 MBC '손석희의 질문들4'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두 창작자, 배우 심은경과 소설가 김애란이 자신들의 '실패한 꿈'을 털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대중에게는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른 완벽한 프로페셔널로 각인된 이들이 과거의 낯뜨거운 자작시와 힘 조절에 실패한 댄스, 허무맹랑한 락스타의 꿈을 고백했다.단순한 예능적 에피소드를 넘어, 이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현대 성과주의 사회에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23년 차 배우의 엉뚱한 반란, '에어기타'가 품은 진심

이날 방송에서 데뷔 23년 차 배우 심은경은 고등학생 시절 "락밴드를 만들어 도쿄를 휩쓸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밝혔다. 정작 기타는 손이 작아 잘 치지 못했지만, 밴드 영상만을 보고 연습한 현란한 '에어기타(Air Guitar)' 실력을 즉석에서 뽐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당장의 경제적 이익이나 입시 성과로 직결되지 않는 허공의 기타질은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완벽한 시간 낭비다. 하지만 이토록 치열하게 몰입했던 무용한 열정이야말로, 타인의 삶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로서 버틸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근육이 되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AI가 쓴 것 같은데요"… 서투름이 증명하는 인간다움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심은경이 10대 시절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고 썼다는 시구절, "사랑은 역시 상처받아야 제맛이지"를 들은 김애란 작가의 반응이었다.작가를 알지 못한 채 시를 들은 김애란은 "AI가 쓰는 시 같다"고 촌평했다. 한국 문단 최고 수준의 문장가 귀에는 날것 그대로의 치기 어린 감정 표현이 오히려 기계적 조합처럼 들렸던 셈이다.역설적이게도 이 해프닝은 완벽하게 정제된 결과물만 쏟아내는 AI 시대에, 진짜 인간의 성장은 그토록 서투르고 오글거리는 '오답'의 시기를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숨겨진 스텝, 왜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하나

김애란 작가 역시 과거의 엉뚱한 꿈을 고백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글을 쓰는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몸을 쓰는 '댄서'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오디션에 떨어졌던 이유에 대해 그는 "창작에서 중요한 것이 힘 조절인데, 그 힘 조절을 못 해 모든 동작을 방력 있게만 춰서 그랬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최근 18개월 내 심리학계의 잇따른 보고서들은 이러한 '제2의 엉뚱한 자아'가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무용한 열정의 심리적 기능 ]• 안전한 실패처 : 본업의 압박에서 벗어나, 실패해도 타격이 없는 심리적 완충 지대를 제공한다.• 직관의 자극 : 논리적 뇌(글쓰기, 분석)를 쉬게 하고, 신체적·감각적 뇌(춤, 밴드)를 활성화해 번아웃을 방지한다.

'무용한 꿈'의 포기, 개인이 아닌 구조의 문제

영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가 이러한 서툴고 무용한 꿈들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이 결코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현실 감각의 성숙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아무리 순수한 열정을 가져도 돈이 되지 않는취미나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 꿈은 사회적으로 도태된다.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 쉴 틈 없는 노동 환경,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평가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대인들의 정서적 숨통은 계속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삭막함의 결과는 온전히 개인의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이제 쓸데없어 보이는 서툰 열정을 일상에 허락하는 것은 단순히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모든 것이 데이터와 효율성으로 재단되는 삶이 점점 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되어가는 지금, 스스로의 '오답'과 '에어기타'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유와 낭만에 대한 논의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