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열풍이 휩쓸고 간 직장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2025년 9월, 글로벌 아이웨어 기업 아이아이컴바인드(젠틀몬스터)는 자사의 6번째 공식 브랜드로 테이블웨어 '뉴플란(Nuplan)'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 놀라운 점은 이 신규 브랜드의 시작이 오너의 ...
퇴사 열풍이 휩쓸고 간 직장인들의 마음에 새로운 화두가 던져졌다. 2025년 9월, 글로벌 아이웨어 기업 아이아이컴바인드(젠틀몬스터)는 자사의 6번째 공식 브랜드로 테이블웨어 '뉴플란(Nuplan)'을 성공적으로 선보였다.놀라운 점은 이 신규 브랜드의 시작이 오너의 하향식 지시가 아닌, 10년 넘게 안경만 디자인하던 한 직원의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다.회사를 떠나지 않고도 조직의 인프라를 영리하게 활용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신정인 디자이너의 사례는, N잡러 시대에 직장인이 취할 수 있는 진화된 커리어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
직장인의 오랜 판타지 중 하나는 통쾌하게 사표를 집어 던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통장 잔고와 시장의 불확실성은 냉혹하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이 바로 사내벤처다. 이는 기업 내부의 자원을 활용해 혁신적인 신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독립적인 조직 또는 활동을 뜻한다.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젠틀몬스터에서 아이웨어 디자이너로 일한 신정인 씨는 퇴사라는 도피처 대신 이 험난한 사내벤처의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낮에는 클라이언트의 거듭된 수정 요청에 시달리며 안경을 디자인했지만, 퇴근 후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테이블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식기류를 다듬었다. 물결 모양, 열쇠 모양 등 기존의 문법을 파괴한 오브제들이 탄생했다.흥미로운 점은 본업인 안경 카테고리를 완전히 벗어나 테이블웨어라는 낯선 시장을 공략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소속 회사와 경쟁하거나 이해상충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회사에 새로운 확장 기회를 제공하는 영리한 묘수를 뒀다.
물론 회사는 결코 호락호락하게 직원의 개인 프로젝트를 밀어주지 않는다. 신 디자이너가 공식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었던 데는 철저히 치밀한 전략과 환경적 요인이 작용했다.첫째, 메타인지와 환경 선택이다.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탬버린즈나 누데이크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실험하며 직원의 안목을 존중해 주는 조직임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둘째는 앞서 언급한 카테고리의 우회 전략이며,셋째는 가장 결정적인 '선 검증, 후 제안'이다. 서류 뭉치로 된 기획안을 결재판에 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피스텔 테이블 위에서 먼저 물건을 팔았다. 실제 예약 문의가 폭주하며 시장의 수요가 입증되자 회사는 이미 검증된 반응을 공식화하기만 하면 됐다.그녀가 증명한 직장 내 자아실현 전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조직의 토양 파악 : 자신의 크리에이티브를 회사 자산으로 수용해 줄 수 있는 기업문화인지 객관적 진단• 영역의 분리 : 본업과 충돌하지 않되, 조직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비경쟁 아이템 선정• 시장의 증명 : 완성된 제품과 초기 반응(매출 등 숫자)으로 내부 의사결정권자의 리스크를 소거
완벽한 유토피아 직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젠틀몬스터 역시 과거 청년 디자이너들을 과도하게 갈아 넣는다는 극심한 노동 강도 논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기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모순 안에서 그저 소모되는 부속품으로 남지 않고, 오히려 그 조직의 막강한 자본과 인프라를 지렛대 삼아 자신의 세상을 구축해 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회사와 개인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Win-Win)' 구조를 자신의 손으로 빚어낸 것이다. 이러한 개인 단위의 변화는 정부와 학계의 거시적 데이터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2025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데이터를 종합해 보면, 본업을 유지하면서 부가적인 경제·창작 활동을 병행하는 직장인은 이미 60만 명을 돌파했다.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예비창업패키지(특화분야)' 모집 공고를 통해 사내벤처팀 육성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맹목적인 퇴사보다, 기업 내 독립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생존율이 높은 혁신 모델로 평가받는 것이다. 어도어의 사태에서 보듯, 이제 유능한 실무자들은 조직의 명함 뒤에 숨지 않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회사를 플랫폼으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