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은 끝이 아닌 진짜 시작… '다회차 플레이'로 서사의 판을 뒤집는 게임 명작들

과거의 비디오 게임에서 '엔딩'은 목적지이자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대 게임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첫 번째 엔딩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게임을 즐기는 '다회차 플레이(New Game+)'가 단순한 아이템 인계를 넘어 작품의 진정한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스토리텔링 ...

과거의 비디오 게임에서 엔딩은 목적지이자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대 게임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첫 번째 엔딩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게임을 즐기는 '다회차 플레이(New Game+)'가 단순한 아이템 인계를 넘어 작품의 진정한 서사를 완성하는 핵심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진화하고 있다.구독자 50만 명 이상을 보유한 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 '청원이'는 17일 영상을 통해 '게임을 깨고 다시 하면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는 게임들'을 주제로,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서사의 장르와 시점이 180도 뒤바뀌는 명작 5종을 심층 분석해 게이머들의 이목을 끌었다.

괴물의 언어를 번역하다… 시점의 전환이 주는 처절한 비극

다회차 플레이가 주는 가장 극적인 반전은 시점의 전환이다. 1회차에서는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었던 플레이어가, 2회차에서는 오히려 무고한 생명을 학살한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는 구조다.국산 글로벌 히트작 'P의 거짓(Lies of P)'이 대표적이다. 1회차에서 플레이어는 폭주하는 자동 인형(괴물)들을 처치하며 세상을 구하려 애쓴다. 적 보스인 '인형의 왕'의 기괴한 행동과 소음 섞인 언어는 그저 위협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2회차에 접어들어 인형들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되면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인형의 왕은 사실 진짜 흑막(제페토)으로부터 인간을 구하려던 존재였으며, 그의 기괴한 행동은 말이 통하지 않는 주인공에게 온몸으로 진실을 경고하려는 처절한 '몸짓(인형극)'이었던 것이다.명작 액션 RPG '니어 레플리칸트(NieR Replicant)' 역시 동일한 수사학을 쓴다.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마물'들을 도륙했던 1회차와 달리, 2회차에서는 마물들의 대화가 번역되어 들린다. 그들은 사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간의 영혼이었음이 밝혀지며, 플레이어는 자신이 행한 맹목적인 정의에 깊은 죄책감과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생존기에서 타임 루프로, 영웅에서 악마로… 장르의 변주

장르 자체를 비틀어버리는 작품들도 있다. 어드벤처 게임 '옥센프리(Oxenfree)'의 1회차는 기괴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무인도에서 살아남아 탈출하는 스릴러 생존기다. 그러나 엔딩 직후 화면에 노이즈가 끼며 게임은 다시 섬으로 향하는 배 위로 플레이어를 되돌려 보낸다. 2회차부터는 이 게임이 거대한 '타임 루프물'이었음이 밝혀지며, 플레이어는 기시감(데자뷔)을 느끼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루프를 영원히 끊어낼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된다.고전 명작 '소울 크레이들 : 세계를 먹는 자'는 2회차에서 아예 정반대의 도덕적 선택지를 제공한다. 1회차에서는 내면의 악마(기그)를 억누르며 세상을 구하는 왕도적인 영웅 서사를 따르지만, 2회차에 해금되는 '데몬 루트'를 선택하면 시작부터 압도적인 악의 힘을 받아들여 동료와 세상을 모두 파괴하는 절대 악으로 군림하게 된다. 하나의 게임 타이틀 안에서 빛과 어둠의 완벽한 대척점을 모두 경험하게 한 것이다.

시스템이 곧 세계관이 되다… 선구적인 실험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년 전에 발매된 '브레스 오브 파이어 5 (데스쿼터)'는 다회차 시스템을 게임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과 완벽하게 일치시킨 선구적인 작품이다.이 게임은 지하 세계 인류의 사회적 지위를 'D-Ratio'라는 수치로 매긴다. 1회차의 주인공은 최하층 빈민(1/8192)이기에 출입할 수 있는 구역도, 볼 수 있는 스토리 컷신도 극도로 제한된다. 하지만 다회차 플레이를 거치며 플레이어의 스펙(D-Ratio)이 상승하면, 비로소 상층부의 문이 열리고 닫혀 있던 진실과 세계관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다. 계급 사회의 한계를 시스템적으로 체감하게 한 혁신적인 설계다.

다회차, 인터랙티브 매체만의 독보적 예술성

전문가들은 이러한 다회차 게임들의 존재 가치가 단순히 '플레이 타임 부풀리기'가 아니라고 지적한다.영화나 문학 등 일방향 매체와 달리, 비디오 게임은 유저가 직접 내린 선택(살생, 탈출 등)에 대한 책임을 2회차의 달라진 시점을 통해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 '청원이'의 리뷰 영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다회차 플레이가 게임이라는 상호작용(Interactive) 매체만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고도화되고 예술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임을 성공적으로 입증해 냈다.